작성일 : 25-03-23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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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천살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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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원'에 옷들을 팔고 있다. ⓒ 우현주 가게 앞에 걸린 바지들을 뒤적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핸드폰으로 옷을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브랜드명이 나오는 것을 보니 못 입을 싸구려 제품을 파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증거로 옷들 사이에 유명 청바지 브랜드 제품도 끼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제품도 가격은 마찬가지로 5,000원이었다. 꽤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몇 번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 사지 않고 나왔다. 그런데 몇 걸음 가지도 않았는데 맞은 편에서 또 다른 '수입 의류 할인 가게'가 있는 게 아닌가! 벌써 세 번째였다. 하루에 세 군데나 비슷한 류의 가게를 발견한 게 신기하긴 했지만, 이왕 발견한 것, 이곳도 한번 보기로 했다. 이번 가게는 외관상으로는 가장 볼품없었다. 간판은 순전히 구색 맞추기용이었고 빈 점포에 되는대로 옷들을 쑤셔 넣은 듯한 모양새였다. 인테리어나 광고랄 것도 없었다. 유리창에 붙은 '일본 백화점 직수입'이라고 적힌 형광색의 종이가 다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옷들 위에 큼지막하게 붙어 있는 가격표가 눈에 확 들어왔다. 거기에는 심지어 5,000원도 아니었다. '4,900원'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매장 밖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은 '2,900원'이었다. ▲ 강남역 지하상가 세번째 중고 옷가게 최근 모습?가장 저렴했던 세번째 중고 옷가게의 최근 사진. 가격표에 적힌 숫자가 '4,900원'이다. 더이상 '2,900원'은 없었다. ⓒ 우현주 그날 나는 결국 세 번째 집에서 옷을 한 벌 구입했다. 가격이 너무 매력적이라 도저히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산 것은 2,900원짜리 트위드 재질 정장 치마였다. 내가 산 치마를 본 남편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주 주말 남편과 함께 다시 강남역 지하상가, 그 자리로 갔다. 그때까지 반신반의하던 남편한테 '가게들'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 후 나는 세 번째 가게에서 다시 옷 두 벌을 더 샀다. 각각 '4,900원', '6,900원'이었다. 남편은 내 예상대로 첫 번째 가게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가게들은 우리 부부의 또 다른 보물창고가 되었다. 며칠 만에 없어진 '2900원' 가격표 요즘 우리는 옷을 사야 할 필요가 있으면 일단 당근부터 검색한다. 그리고 중고 가게를 뒤진다. 그렇게 보물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하루에 한꺼번에 중고옷 매장을 세 군데나 발견한 날,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강남이 어떤 곳인가. 대한민국 부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다. 머리 위, 지상에는 고층 빌딩숲에 각종 금융 기관들이 들어서 있을 뿐만 아니라 넓은 도로를 따라 온갖 크고 밝은 매장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다. 그런데 바로 그 밑, 지하상가에는 요즘 어디 가서 찾기도 힘든 저렴한 가격에 옷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셋,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이 대조적인 두 세계가 하필이면 지상과 지하로 똑 떨어지게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도 공교로웠다. 언론에서 '빈부격차', '빈부격차' 하는 말을 자주 접한다. 경제 한파가 우리 사회에 메울 수 없는 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대개 그때뿐이었다. 딱히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그날, 나는 불황이 할퀴고 간 깊고 어두운 틈을 코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만큼은 나에게 강남은 '부자 동네'나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이 아니었다. '빈부격차를 피부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얼마 전 다시 지하상가를 찾았다. 기사에 쓸 사진이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더 이상 '2900원'이란 가격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장 저렴했던 세 번째 가게에서조차 가격을 올린 것이다. 사진을 찍으며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겨울은 지나가는데 이 경제 한파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 group 》 4050글쓰기 : https://omn.kr/group/4050_writer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